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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부모노트

사춘기 훈육|어디까지 물러나야 할까?

기준 없이 물러나면 방치가 되고, 기준 없이 개입하면 잔소리가 됩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 마음이 가장 복잡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두면 생활이 무너질까 봐 불안합니다.

조금만 말하면 잔소리가 되고,
아무 말도 안 하면 방치하는 것 같고,
어디까지 물러나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 부분이 참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겉모습은 거의 성인처럼 보입니다.
키도 크고, 말도 제법 하고, 자기 생각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순간 착각합니다.

“이제 다 알겠지.”
“자기 문제 정도는 스스로 알겠지.”
“말 안 해도 본인이 고치려고 하겠지.”

그런데 막상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릅니다.

아이도 자기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고,
고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춘기 아이는 겉으로는 다 큰 것 같아 보여도,
아직은 방향을 잡아가는 중인 미숙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춘기 아이에게 부모가 무조건 물러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먼저 필요한 것은 부모가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사춘기 아이와 부딪히는 문제는 대부분 기준이 흐릴 때 더 커집니다.

스마트폰을 몇 시까지 볼 것인지,
공부는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할 것인지,
방 정리는 어디까지 아이 책임으로 둘 것인지,
귀가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이런 기준이 부모 마음속에서도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그때그때 감정으로 말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참았다가,
어느 날은 폭발하고,
어느 날은 봐줬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화를 냅니다.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의 말이 기준이 아니라 기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엄마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또 잔소리 시작이네.”
“어차피 엄마 마음대로잖아.”

이렇게 받아들이면 대화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가 먼저 자기 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기준은 아이를 누르기 위한 규칙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세워두는 울타리입니다.


기준을 정했다면 아이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부모가 기준을 세웠다면, 그다음은 아이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엄마가 이렇게 정했으니까 따라.”

이 방식은 사춘기 아이에게 잘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이미 자기 생각이 생겼고, 자기 영역을 갖고 싶어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준을 말할 때는 이유를 같이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엄마는 네가 스마트폰을 보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아니야.
그런데 밤늦게까지 보면 다음 날 아침에 못 일어나고, 학교생활이 힘들어지니까 그 부분이 걱정돼.”

“공부를 하루 종일 하라는 게 아니야.
다만 네가 정한 최소한의 공부 시간은 지켜야 나중에 후회가 덜할 것 같아.”

“방을 엄마 마음에 들게 치우라는 게 아니야.
하지만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어질러지는 건 네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하면 아이도 부모가 자신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걱정되는 지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에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사춘기 아이는 대화를 해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기준과 이유를 차분히 말해두면,
아이 마음속에도 생각할 여지가 남습니다.


아이의 말도 들어봐야 합니다

부모가 기준을 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최종 답은 아닙니다.

아이의 말도 들어봐야 합니다.

아이가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무엇이 힘든지,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부분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지 들어봐야 합니다.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정답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자기 생각을 말해볼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의 말이 부모 마음에 다 들지는 않습니다.

“그게 말이 되니?”
“그건 핑계지.”
“너는 아직 몰라.”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반박해버리면 아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듣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말이 미숙해도 일단 긍정적으로 들어봐야 합니다.

아이가 말하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말하다가 스스로 모순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부모는 그 과정을 기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부모 기준과 아이 생각이 만났다면, 그다음은 합의입니다.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본인도 참여했다고 느낄 수 있는 약속입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문제라면 이렇게 정할 수 있습니다.

“평일에는 몇 시 이후 사용하지 않는다.”
“숙제나 공부를 마친 뒤 사용한다.”
“주말에는 조금 더 허용하되, 잠자는 시간은 지킨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다음 날 사용 시간을 줄인다.”

공부 문제라면 이렇게 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최소한 이것만은 한다.”
“시험 기간에는 별도 기준을 정한다.”
“부모는 매시간 확인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정한 최소 약속은 지킨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기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정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너무 느슨하게 정하면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대화할 수 있다는 문을 열어두면 좋습니다

저는 기준을 정할 때 아이에게 이런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렇게 해보자.
그런데 네가 해보면서 너무 부당하다고 느끼거나,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되면 다시 이야기해도 돼.”

이 말은 아이에게 꽤 중요합니다.

부모가 정한 기준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 판결처럼 느껴지면 아이는 반발합니다.
하지만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아이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는 자기 의견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크게 반응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최종 결정권은 갖고 있더라도,
자기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끼면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기준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은 대화를 통해 조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단, 조정 가능하다는 말이 아무렇게나 바꿔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해진 기준을 지키며 생활해보고,
실제로 불합리한 부분이 있거나,
아이에게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다시 의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아이도 책임감을 배웁니다.


지켜지지 않을 때의 조치도 미리 정해야 합니다

규칙을 정할 때 많은 부모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기준은 정하지만,
그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의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너 또 약속 안 지켰지?”
“이제 다 압수야.”
“엄마가 그럴 줄 알았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약속을 어긴 일보다 부모의 화에 더 집중합니다.

그래서 처음 기준을 정할 때,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조치도 함께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한 시간을 넘기면 다음 날은 사용 시간을 줄이자.”
“숙제를 계속 미루면 주말 자유시간을 다시 조정하자.”
“잠자는 시간이 계속 늦어지면 밤에는 휴대폰을 거실에 두기로 하자.”

이때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 결과가 감정적인 벌이 아니라 미리 합의한 조치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도 “엄마가 화나서 그러는구나”가 아니라,
“내가 정한 약속의 결과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는 ‘내 자식’보다 ‘어린 동생’처럼 대하면 편합니다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너무 “내 자식”이라고만 생각하면,
부모 마음속에 자꾸 좌지우지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키웠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챙겼는데.”
“엄마 말이 맞는데 왜 안 듣니.”

이런 마음이 생기면 대화가 지시로 바뀌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잠시 “어린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아직 미숙하지만 자존심은 있는 사람.
도움은 필요하지만 간섭은 싫어하는 사람.
자기 문제를 고치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

이렇게 보면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너 왜 그러니?”보다
“어떤 부분이 제일 어려워?”라고 묻게 됩니다.

“엄마 말 들어.”보다
“우리 방법을 한번 같이 찾아볼까?”라고 말하게 됩니다.

물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동생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는 책임이 있고, 아이에게는 아직 보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화할 때만큼은
아이를 내 마음대로 움직여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아직 서툰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물러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춘기 아이에게 부모가 물러난다는 것은
아이 인생에서 빠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모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끌고 가던 자리에서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이 대신 모든 것을 결정하던 부모에서,
아이와 함께 기준을 세우는 부모로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준은 있지만 강압적이지 않은 부모.
아이 말을 듣지만 무조건 끌려가지는 않는 부모.
기다려주지만 방치하지 않는 부모.
잘못했을 때 감정으로 몰아붙이기보다, 미리 정한 약속을 지키게 하는 부모.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부모도 사람이라 불안하고,
아이의 태도에 상처받고,
괜히 내가 잘못 키운 건 아닌가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춘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부모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기준은 부모가 세우고, 방법은 아이와 함께 찾아가는 것

사춘기 아이는 아직 자라는 중입니다.

겉모습은 다 큰 것 같아도,
자기 마음을 설명하는 법도 배우는 중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배우는 중이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감당하는 법도 배우는 중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완전히 손을 놓으면 아이는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모든 것을 통제하면 아이는 자기 삶을 연습할 기회를 잃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의 균형입니다.

부모가 먼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아이에게 설명하고,
아이의 말도 들어보고,
가능한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

그리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의 조치까지 미리 정하는 것.

저는 이것이 사춘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부모 마음대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도록 기준과 연습의 기회를 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사춘기 아이에게 부모는 더 이상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멀리 사라져도 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한 걸음 물러서되,
아이 곁에서 기준을 잡아주는 사람.

그 정도의 거리감이
사춘기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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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개인 경험과 일반적인 양육 정보를 바탕으로 한 참고용 글입니다.
아이의 성향과 가정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며, 심리적 어려움이나 학교생활 문제가 지속될 경우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